“지금 이 순간의 가장 큰 비극”
GPT와 같은 LLM 인공지능 들이 등장하기 직전, 그러니까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막 주목받기 시작했을 무렵 내가 떠올렸던 프로젝트의 제목은 지금 이 순간의 가장 큰 비극 이었다. 온라인 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인공지능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뿌려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읽고 분석해서,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비극이 무엇인지를 찾아 보여줄 수 있을까. 인간 집단은 오히려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비극들을 찾아내는 인공지능. 당시의 나는 그 질문이 인간성의 어떤 단면을 드러내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.
웹페이지 형식으로 구현된 떨어지고, 끼이고, 깔린(Fallen, Caught, Crushed) 은 그렇게 오래 전 시작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업이다. 인공지능은 수집된 언론기사를 분석해 그것이 산재사망 사고에 대한 것인지를 판별하고 분류하고 다시 기록 한다.
적어도 현재까지 사람은 죽고 나서 다시 죽을 수 없으므로, 죽음은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며 태생적으로 고유하다. 그렇기 때문에, 이미 디지털 시스템 안에서 다루어지기 위해 납작해진 죽음들이지만 그것이 그저 익명의 데이터로서만 다루어 지지 않았으면 했다. 어떤 방식으로든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채로 표현 될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.
수집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쌓아두는 데이터베이스에는 pid 라고 하는 라벨이 있다. 이 값은 사건과 연관지어 피해자를 특정한다. 이를 이용해 피해자 마다의 상세 페이지에 미세하게 다른 모양의 꽃이 그려진다.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른 꽃. 이 고유한 형태는 특정 피해자와 연결지어져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된다. 이와 더불어 선의 방향을 이용해 정보를 인코딩 하는 방식을 고안했는데, 이를 통해 개별 사건에 대한 기록을 무늬의 형태로 만들었다. 이 미로처럼 보이는 패턴 역시 모든 피해자 마다, 사건 마다 고유한 형태를 가진다. 그리고 인코딩의 역방향으로 디코딩하면 원래의 데이터로 살아난다. 언젠가 이 프로젝트가 어떤 이유로든 종료 되었을 때, 그 패턴의 이미지가 어딘가에 떠돌고 있다면 그것들은 마치 오래된 비석처럼 일종의 기록으로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.
사람이 언젠가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죽음들이 특별한 이유는 그 중 꽤 많은 것들은 발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들이기 때문이다. 우리가 관여하는 시스템, 나의 세계가 구조적으로 그러한 죽음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. 그러다보니 마치 그것이 세상의 기본값인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며 그 안에서 죽음들은 쉽게 잊혀진다.
잊혀지는 죽음들 역시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는 계속 발생되고 있으므로 잊혀지는 것 역시 죽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것 일수도 있다. 하지만 그러한 죽음들에 대한 알림은 우리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잊고 있다는 것, 대부분의 삶들이 그런 것들을 잊거나 내면화 하는 것 위에 놓여져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작동하는 무언가 일거라고 믿는다. 그리고 그 알림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 나타났다 사라질 경험에 가까운 것이라고 해도, 누구에게든 언젠가 한 번쯤은, 그 찰라의 순간이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매섭고 슬프고 안타깝고 비열하고 사무치는 강렬한 울림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.
2026년 9월, 이강일